‘달려라 하니’ 대구 주장 한희훈이 뛰어온 100경기
2019-08-09

월드컵 휴식기가 끝나고 전반기 1승에 그친 대구FC는 전혀 다른 팀으로 변해있었다. 외국인 선수들 뿐 아니라 어린선수들까지 골고루 활약을 펼치며 9월까지 17경기에서 9승을 거뒀다. FA컵 또한 8강전에서 만난 목포시청을 제압하고 4강에 진출한 상태. 이 모든 대구의 상승세의 중심에는 한희훈이 있었다.

한희훈은 대구FC의 주장이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팀을 2년째 이끌고 있다. 부담감과 책임감이 많이 따르는 자리지만 어린선수가 비교적 많은 대구에게 한희훈은 꼭 필요한 존재다. 

이런 한희훈에게도 어느덧 100경기가 찾아왔다. 지난 26일 경남과의 경기에서 100번째 경기를 맞이한 한희훈은 이날도 역시 주장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파이팅 넘치는 투혼과 때로는 동네 형 같은 친근한 모습을 보여줬던 한희훈. J리그2부터 K리그1 주장의 자리까지 그의 축구 인생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축구가 좋았던 한희훈, 처음 찾아온 부상의 시련

한희훈이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단순히 축구가 좋아서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동아리 축구부에 들어가며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태권도 관장님이셔서 장래에 태권도에 관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축구가 더 좋았기에 축구를 택하게 됐죠. 중학교 때 정식 축구부에 입단 테스트를 보고 들어갔고 아버지도 경기에 뛸 수 있으면 축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고 했어요.”

훗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꾸준하게 경기에 출전한 한희훈은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축구를 계속하게 되며 상지대에 입학하게 됐다. 상지대에 입학한 한희훈은 수비수지만 골키퍼로서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특별한 경험도 있다. “상지대에서 우수상을 받았을 때는 골키퍼로 받았어요. 팀 골키퍼가 부상을 당해서 제가 대신 나갔죠. 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지난 울산전에서 (조)현우가 퇴장당하고 (류)재문이 대신 제가 골키퍼 장갑을 꼈으면 더 잘 막지 않았을까요?”(웃음)

선수생활 내내 순탄한 길을 걸어온 한희훈은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당시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부상이라 한희훈은 더 힘들게 느껴졌다고 한다. “저는 부상을 대학교1학년 때까지 한 번도 당하지 않았어요. 대학교 때 처음 큰 부상을 당했죠.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부상의 여파로 K리그 드래프트에도 선택되지 못해 일본팀을 찾게 됐죠.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을 찾고 싶었어요.”

바다를 건너 내가 뛸 수 있는 팀으로

K리그에 지명 받지 못한 한희훈은 자신이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일본으로 떠났다. 한희훈은 에히메FC와 도치기 SC에서 약 3년간 뛰며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제가 팀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축구를 해야 했어요. 에히메FC에 입단테스트를 보고 입단하게 됐죠. 제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요. 처음에는 통역도 없고 힘들었지만 저의 성격으로 버텨낸 것 같았어요. 일본 생활이 힘든 것도 있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이겨내면서 인생에서 보람찼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일본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시 돌아온 한국, K리그의 첫 발을 내딛다. 

3년간의 일본생활을 끝내고 한희훈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활약을 알아준 팀은 부천FC1995. 특히 당시 부천FC의 사령탑이었던 송선호 감독의 러브콜이 한희훈의 마음을 움직였다. “J리그1로 올라가서 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천FC1995에 계시던 당시 송선호 감독님이 저에 대한 믿음을 주셨어요. 저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K리그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부천의 유니폼을 입은 한희훈은 4월3일 충주험멜과의 원정경기에 선발로 풀타임 활약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첫 경기가 충주와의 원정경기였는데 1-0으로 이겼었어요. 제가 오랜만에 경기를 뛰거나 긴장하면 다리에 근육경련이 올라오거든요. 그날 근육경련만 올라오지 말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뛰었었어요. 또 감독님이 제가 잘하도록 항상 신뢰를 주셔서 저만의 플레이가 나온 것 같아요.”

대구FC로의 이적 캡틴 한희훈

부천에서 40경기를 소화한 한희훈은 한 시즌 만에 대구로 이적한다. 당시 대구는 챌린지에서 클래식으로 막 올라왔던 팀이었다. “조광래 사장님이 저를 더 성장 시켜주실 거라 생각했고, 대구FC에서 더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에 대구이적을 택하게 됐습니다.”

대구로 이적한 한희훈은 시즌 첫 경기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장완장을 차며 팀을 이끌게 된다. “(박)태홍이가 부상으로 나가면서 제일 고참 이었던 제가 주장을 하게 됐어요. 원래 (조)현우가 부 주장이었기 때문에 완장을 차고 나갔었어요. 하지만 현우는 필드 플레이어가 주장을 맡고 선수들과 소통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권유하여 제가 이어받게 됐죠. 지난해 주장을 맡고 팀 성적도 좋았기에 올해도 저에게 맡겨 주신 것 같아요.” 

2017시즌 대구는 8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2018시즌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올 시즌 전반기의 대구는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계속되는 퇴장과 외국인 선수들의 부상으로 대구는 7경기 만에 첫 승을 올렸다. 대구가 전반기에 기록한 승수는 단 1승. 팀이 침체되며 주장 한희훈의 마음도 무거워져만 갔다. “부담보다도 걱정이 컸어요. 강등되면 개인적으로 팀으로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잖아요. 강등은 절대 당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정이 없고 책임감이 없으면 화도 안내요. 하지만 저는 대구FC가 저의 팀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뛰었어요. 경기력과 성적 좋지 않고 외국인 선수도 없고, 시즌 초에 너무나 힘들었죠. 앞이 안보였어요.”

그러던 한희훈이 확성기를 들었다. “팬 분들이 답답해하시면서 SNS에 글을 올리셨어요. 저는 주장을 하면서 소통을 중요시 생각하거든요. 팬 분들과도 식사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해요. SNS에 장문의 답문을 올리고 수원과의 경기 후에 확성기를 들게 됐습니다. 당시에 경기도 졌고 우시는 팬 분들도 너무 많으셨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믿어달라는 말뿐이었어요. 월드컵 휴식기에 준비를 잘해서 다른 팀으로 변해서 오겠다고 약속드렸죠.”  

한희훈의 약속과 팬들의 바람이 간절했던 걸까? 대구는 월드컵 휴식기가 끝나고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득점이 많아지고 이기는 경기를 했다. 점점 선수들은 자신감을 찾았다. “전지훈련 때는 다른 팀이 60%~70% 훈련할 때 저희는 100%으로 훈련했어요. 백사장도 뛰고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지금 한 발 더 뛸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어린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자나요. 전지훈련 끝나고 나서도 저희는 더 많이 운동을 해요. 경기를 이기다 보니까 자신감이 붙을 수 있던 것 같아요.”

한희훈에게 100경기란?

2016년 한국으로 돌아온 한희훈은 매 시즌 팀의 주전으로 뛰면 3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100경기를 달성했다. 한희훈은 100경기 소감에 대한 질문에 “지난해까지는 경기수를 세지는 않았는데 올 시즌 들어올 때는 100경기를 뛰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일본에서의 기록이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100경기 타이틀’을 달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고 답했다.

돌이켜보면 제일 힘들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수많은 경기 중 한희훈이 뽑은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는 지난 4월 첫 승을 올린 강원과의 경기였다. “매 경기 모두 기억에 남고 중요한 경기지만, 그 중에도 올해 첫 승을 올린 전반기 강원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올해 승이 없던 상태였고 제가 자책골을 내주는 바람에... 진혁이가 골을 넣어줘서 다행히 이겼어요. 이때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소통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

한희훈은 경기를 뛰지 못하는 날이면 관중석에서 팬들과 같이 응원하곤 한다. 그만큼 팬들을 아끼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주장이다. “일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팬 분들이 없으면 선수로써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저희 팀이 강등 됐었어요. 당시 마지막 경기에 비가 쏟아지는데 팬 분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그날 경기에도 지고 이미 강등이 확정된 상태였어요. 경기가 끝나고 주장과 선수들이 나와서 인사를 했죠. 팬 분들이 경기에 진 것은 선수 잘못이 아니라며 기립박수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그 후에 팬 분들에게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대구에 와서도 주장이 되고 팬 분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합니다.”  

팬들에게 한 마디

“올 시즌 초반에 팬 분들께서도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선수들도 죽기 살기로 노력을 했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과 팬 여러분들을 속이지 않고 경기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저희를 믿고 응원해 주시면 경기장에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을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각오는?

“올해 부상 때문에 저의 폼이 떨어져 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계속 뛰고 싶습니다. 대구가 저를 필요로 하면 은퇴할 때 까지 남고 싶고 대구에서 200경기도 달성하면 좋죠. 더 많이 배우고 팬 분들에게도 인정받고 싶고 더 좋은 경기력으로 상위 스플릿에 도전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 - 대구FC 크루 조영준

영상 - 대구FC 크루 이솔미, 소헌제, 김경한, 조영준

[대구FC 축구전용구장 공사 현황 18. 10. 05]

기사제공 대구 FC